북한도 격분하여 중국대사를 추방하고, 서로 국경선에서는 총격전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1969년 김일성이 돌연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것은 단순한 정치광고였을 뿐이었다. 중국학자들의 심상치않은 견해들도 문화대혁명 이후로 나오기 시작했다. 오히려 1962년 국
중국이 북한붕괴이후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고구려사를 왜곡하고 심지어 신라지역까지의 연고권을 주장하며, 향후 다툼의 여지를 만들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은 과도한 주장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분명히 통일한국의 출현은 한반도의 민족주의가 고양될 것이고, 이것은 중국국경
중국해와 통킹만의 영유권 문제등과 함께 국가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변강지역 안정문제에 직결된다고 보았다. 이 시기는 1993년 이후 불거진 제1차 북한 핵위기의 전개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북한위기와 이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동북지역의 불안정이 동북의 변강문제를 연구하게 한 배경이었다고 할
중국의 당나라에 원병 요청
(2) 백제 멸망(660년) -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멸망시킴.
백제는 신라와 분쟁을 계속하여 642년 신라의 40여 성을 공략하자, 신라는 위기에 처하고 고구려에 구원을 요청하였지만 거절당하였다. 그 뒤 당나라가 신라의 요청을 받아들여 660년 소정방이 13만 대군을 이끌고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중국이 성장할수록 그 영향력 또한 더욱 커져가고 있다. 따라서 이런 중국이 과거와 현재에 걸쳐 남·북한을 포함한 한반도에 어떤 사상적 기반을 가지고 어떤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지를 알아보고 이를 기반으로 앞으로의 한·중 관계를 예측해 보기 위해 이 글을 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