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흐루시쵸프가 1964년 10월 퇴임한 후 등장한 브레즈네프는 냉전에서 긴장완화에 과정을 추진하여 평화공존을 보다 굳게 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서방측과의 화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유럽에서 소련은 서독의 보복전쟁과 핵무장의 저지를 제1의 과제로 하였다. 이를
소련(러시아, 소비에트연방)의 약력
- 19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절대주의적인 봉건적인 구조를 가졌던 러시아는 유럽의 산업화된 국가들과 교류를 하면서 변화의 압력을 받게 된다. 특히 유럽의 열강들이 충돌했던 1850년대의 크리미아전쟁에서 러시아의 대패는 그것의 사회적 후진성이 여실
러시아혁명은 볼쉐비키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이루어졌다기 보다는 러시아인들이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집단적 평등의식을 추구하는 집단정서가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낸 산물이었다. 그리고 1917년 혁명의 결과 만들어진 소비에트 체제 역시 그 모습은 다를지라도 러시아인의 집단주의적 정서에 기
러시아 혁명을 이른 구소련의 사회주의 국가와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의 현실사회주의 내지 국가사회주의는 마르크스가 주장했던 과학적 사회주의와는 성격이 다른 사회주의이었다. 이론의 사회주의와 현실적로 적용되어지는 사회주의는 전혀 다른 의미를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에서 이른바 ‘스탈린 비판’과 함께 진행된 탈(脫) 스탈린주의는 이들의 반(反) 김일성운동에 기반이 되어주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김일성은 ‘1956년부터’는 자신이 직접 당 사업을 틀어쥐기로 결심하게 된 것이었다. 김일성, 「당사업을 개선하며 당대표자회 결정을 관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