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적인 것이다. 이와 같이 주술적인 노래를 무가라고 부르고, 문학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주술적인 노래를 문학이라고 보는 데는 문제가 있다. 문학이라면 예술성을 가지는데, 주술적인 것이 어째서 예술적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바로 문제이다. 이 문제는 무가가 지닌 주술성과 예술성의 관계
Ⅰ. 서론
무속이 한반도에 언제부터 존재했는가를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무속의 발생원인을 심리적인 면에서 분석한다면 샤머니즘적 요소는 고대 원시 사회에서부터 존재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인생의 역경과 재앙에서 회피하고 복을 추구하는 인간의 심리상, 무속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
무가 강등학 외, 『한국구비문학의 이해』, 월인, 2005 pp338~343
서정무가는 무가의 문학적 갈래 가운데 서정적 경향을 띤 무가를 말한다. 「노랫가락」,「창부타령」등이 대표적인 예이고, 전라도를 비롯한 여러 지역의 무가에서도 서정무가를 발견할 수 있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씻김굿에 서정무가
무가의 쇠퇴
이처럼 고대부터 우리 민족과 함께 했던 무가는 오늘날은 일상생활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 뿐만 아니라, 매체에서 비춰지는 무속의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국문학의 한 갈래라기보다는 무당이 부르는 미신적 내용의 노래로 치부 되고 있다. 그렇다면 무가가 이토록 쇠퇴하게 된 원인은
구비문학은 기록문학과 달리 현장에서 살아 숨쉬는 문학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얼굴을 맞대고 호흡을 나누는 바로 그 자리에 존재한다. 그 자리는 노동의 현장일 수도 있고, 놀이의 현장일 수도 있으며, 의식(儀式)의 현장일 수도 있다. 삶의 현장에는 어느 곳에나 구비문학이 있어 생활의 일부를 이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