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이런 두 인식 지평이 열리면서 각각은 다시 분화를 일으켜 다음 시기의 여러 현대 소설적 남상을 만든다. 따라서 1921년부터의 소설사 재점검은 인식변화의 명확한 구획을 가른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본다.
1920년대 초에는 낭만과 퇴폐적인 경향이 풍미했고 그 중반 이후에는 프로문학과
사회주의적 사상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1920년대 초부터 1927년 신간회가 결성되기까지 결성된 사상단체는 청년단체 1,092, 정치단체 338, 노동단체 182, 형평단체 130을 헤아리고 있었다. 동경유학생들로부터 유입되어 국내에서 급격하게 성장하기 시작한 사회주의 운동은 1925년에 이르러 세계적으로
프로문학이 노동자·농민의 독점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식인 작가가 쓰고 또 지식인 독자만이 읽을 수 있는 작품으로 되어 있었다. 이러한 문단적 현실은 프로문학이 극복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점 중 하나였다. 실상 노동자·농민들은 여전히 육전 소설의 애독자였다. 이러
신경향파문학에로 시대가 전이하는 기간에 나타났다. 이들은 앞서 계몽적 요구에서 전체를 우위에 둔 이인직과 이광수, 그리고 『백조』의 주관주의가 지닌 관념성을 피하는 것, 즉 인간적 요구로서의 개성을 내세우고 주관의 표현보다는 대상의 묘사가 작품의 주를 이루는 것으로 특징지어진다.
년대 초두부터 명백하게 경향적 색채를 띤 시와 소설을 발표했다. 또한 김복진(金復鎭)과 연학년(延鶴年) 등은 그 이전에 계급주의를 지향한 사회조직에 관계하고 있었다. 여기에 기폭 장치를 마련한 것이 동경 유학생 신분의 김기진이다. 그는 당시 일본에서 유포된 신흥사회과학에 빠져든 다음 특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