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문학운동의 조직적인 실천이 불가능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 무렵에 그는 현실의 인정세태에 풍자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면서 장편소설 <인간수업>을 내놓았으며, 장편소설 <어머니>, <신개지> 등에 이어 자전적인 성격이 강한 <봄>을 내놓고 있다. 1945년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연맹 건설을 주도하
영향에 의한 것이었다. 이후 카프는 일본 나프의 영향하에서 정치적 성격을 더욱 강하게 띠게 되었다. 제1차 방향전환을 주도하였던 조중곤ㆍ이북만ㆍ홍효민(洪曉民)ㆍ한식 등도 예술의 특수성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고 예술운동이 정치운동의 범주 속으로 들어 갈 것을 주장한 ‘제3전선파’였다.
카프>에 가맹하게 되었다. 1927년 카프의 1차 방향 이전에는 주로 그의 젊은 시절 체험한 빈궁을 소재로 한 작품을 주로 썼으며 카프가 ‘예술의 볼셰비키화’를 위한 재 조직을 하자 출판부의 책임을 맡기도 했으며 카프 1차 검거 때 옥중에서 구상한 <서화>와 장편 <고향>을 발표하고, 문학예술로서의 사
것을 주장하면서 맹원 총회를 열고 문호개방, 지부설치 등 조직의 확대를 꾀했다. 그래서 초기의 카프 구성원은 예술인들이 대부분이었으나 조직이 확대된 후에는 비예술인들이 많이 가담하게 되었다. 바로 이 때에 제3전선파인 동경유학생 조중곤, 김두용, 한식, 홍요민, 이북만 등이 등장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