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요를 반주 없는 노래 즉 徒歌(도가)라고 불렀다.
민요란 용어는 예부터 사용된 것은 아니다. 풍요, 향가, 속요, 동요, 소리, 국풍, 타령, 민간가요 등으로 불렸다. 특히 농부들이 일터에서 부른 노래를 소리라고 하였다.
대중들의 생활현장 노동 또는 집단적인 운동 속에서 크게 발달 전파되었다. 민
민요집』(동국문화사, 1960).
여러 민요집의 자료를 재정리하고 저자의 수집자료를 첨가해서 체계적이며 표준이 될
만한 민요집을 만든 것이다.
⑧김영돈,『제주민요연구 (상) 자료집』(일조각, 1965).
1403편의 제주도 민요를 '노동요', '타령', '동요'의 대항목으로 분류하여 수록, 모두 표준어로
민요)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생긴 신민요이며, 굿거리장단으로 부른다. 본래 무당들이 굿을 할 때 부르던 무가(巫歌) 《창부타령》에서 전화(轉化)된 노래로, 일제강점기 때는 피압박 민족의 비애와 분노를 담은 애절한 호소의 노래가 되기도 하였다. 후렴인 "늴리리야 늴리리야 니나노 난실로 내가
민요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기에 여럿이 만들거나 혼자서 만든 것이며 비전문적인 서민의 노래며 문학이라 할 수 있다. 삶과 밀착되어 서민의 생활, 감정, 사상을 솔직하게 나타내며, 일을 하거나 의식을 거행할 때나 놀이를 하면서 불렀던 민요의 대부분은 생활상의 필요 때문에 존재하였다. 하지만
민요, 꿩, 까치, 사슴, 물고기 등의 동물, 달팽이, 이, 잠자리, 징거미 등의 곤충, 수많은 나물, 꽃, 곡식 등 식물에 관한 노래들은 거의가 순수 유희요라 할만한 것들이다. 민요에는 노동요이면서 유희요의 성격을 지니고, 유희요이면서 노동현장에서 부르는 소리가 많은데, 순수한 ‘놀이소리’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