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의(所依)하는 형태의 진언이 아닐까 추측하는 바이다. 그러나 무외삼장이 대일경을 번역한 것은 혜통이 등장하기 훨씬 뒤의 일로, 이것역시 무외삼장의 조직된 순밀(純密)이 아닌 잡밀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무외삼장의 존재가 논란이 되는 것은 밀교의 시조라 불리우는 그가 중국(당)으로 들어온
많은 논문이 있다. 특별히 신라의 신인종을 중점적으로 신라의 밀교와 신라의 통일을 살펴본 문명대 씨의 견해, 신라 즉신성불 사상을 밀교적 영향 속에서 살펴본 서윤길 씨의 견해, 신라의 밀교 수용을 명랑과 혜통의 밀교계통을 따라 살펴본 김재경 씨의 견해를 빌어서 필자가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불교적인 것으로 치우친 데에 못내 아쉬워하는 바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료들이 우리의 고대사․신화․역사 민속학적 보고인 만큼 이를 새롭게 해석한다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그중 특히 『삼국유사』는 『삼국사기』가 얘기하지 못하는 바를 재차 삼차적인 방법으로 말하고 있고, 밀교에
불교적인 것으로 치우친 데에 못내 아쉬워하는 바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료들이 우리의 고대사․신화․역사 민속학적 보고인 만큼 이를 새롭게 해석한다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그중 특히 『삼국유사』는 『삼국사기』가 얘기하지 못하는 바를 재차 삼차적인 방법으로 말하고 있고, 밀교에
삼국유사》라는 책명이 말해 주듯이 일사유문적(逸事遺聞的) 기록인 탓에 불가피한 일이었다 하겠으며, 당시의 민속·고어휘·성씨록·지명 기원·사상·신앙 및 일화 등을 대부분 금석 및 고적으로부터의 인용과 견문에 의하여 집대성해 놓은 한국 고대 정치·사회·문화생활의 유영으로서 한민족의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