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는 없는 거니까. 그렇지만 오늘을 발판으로 꿈꾸어져야 할 미래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마치 중국은 너무 많이 앓아서 더 이상 자랄 수 없는 아이처럼, 과거의 상처가 너무 깊어 더 이상 기대를 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그들의 발목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그 상처란 것은 무엇인가.
예술가, 방황하는 젊은이의 모습은 지구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중국 또한 다른 곳과 다를 바가 없으니 이제 그만 정치적이 틀을 영화에 들이대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천안문 사건을 빼놓고 영화를 보는 것은 불가능 하다. 천안문 사건이라는 공통의 트라우마를 가진 북경의 젊은 예술인들의
18살 때 타이유안의 예술학교에서 유화를 전공했으나, 1993년에 영화로 진로를 바꾼 그는 베이징 영화학교에 들어가 영화이론을 공부했다. 97년 만든 장편 데뷔작, 16mm장편 극영화 <소무>는 그해 해외에서 가장 큰 주목을 끈 아시아영화 중 하나였으며 중국영화의 일반적인 틀을 벗어나 중국영화의 부흥
Ⅰ. 세대별 영화1. 제 5세대 영화1) 시대적 배경
중국영화 역사에서 문화대혁명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중국영화사 속에서 문혁이 끝난 후에 이어지는 시기를 상처 회복의 단계로 보듯이 그 10년의 세월이 영화 발전을 퇴보 시켰기 때문이다. 문혁의 부정적인 영향은 한 세기가 저물어도 가슴 속
영화학교에 들어간 지아장커는 2학년 때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한화로 300만원의 돈으로 첫 단편영화를 찍는다. 그의 첫 단편영화인 <샤오산의 귀향>은 홍콩 독립단편영화제에서 금상을 수상하게 되고, 이것이 기회가 되어 장편영화에 데뷔하게 된다.
1997년 북경영화학교를 졸업한 중국제6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