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평양대부흥운동의 역사적 배경
평양대부흥운동에 대한 연구들은 이 부흥운동이 일어나게 된 배경에 대해 깊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배경과 원인으로는 한국의 내적인 것으로 한국교회가 갖고 있던 사경회, 기도회 및 한말 위기에 처한 국가적인 상황을 들 수 있고, 외적인 요인으로는 세계부흥
한국인들이 일본인이나 중국인들보다 “순하고 감정적”(docile and emotional)인 것도 한국인들이 기독교를 매우 빨리 받아들인 이유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또한 1907년1월14일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있었던 부흥회 첫날 저녁 상황을 목격하였던 스왈론 선교사는 이렇게 증언하였다.
“월요일 밤 성
부흥운동 소식을 전하며 한국선교사들과 한국교회 지도자들에게 도전을 준다.
존스톤의 설교는 한국에 파송받은 선교사들의 시각을 바꾸어준다. 평양주재 한국의 선교사들은 존스톤으로부터 인도 부흥 소식을 전해 듣고 자신들이 가졌던 시각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존스톤은 서울선교
교회의 미래가 계속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촉진하는데 있다. 비록 한국교회의 성공적인 부흥에 대하여 한국인의 성격, 당시의 사회적 여건, 초기 선교사들의 효과, 그리고 한국교회 성직자와 평신도 의 협동 등을 역설하는 별별 견해가 있으나 필자가 확실히 믿는 바는 한국교회의 부흥운동
운동이 필요하다. 이렇게 될 때 소그룹은 교회를 갱신시키는 도구이면서 갱신된 모습 그 자체가 될 수 있다. 교회 갱신운동은 항상 근본으로 돌아가려는 열의를 가지고 시작되었고, 기독교 운동의 진수를 찾아내려는 목적으로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런데 이런 갱신운동자들이 취했던 형태는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