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개요
고구려 외에 백제와 신라에도 불교가 융성하여 많은 사찰이 건립되었으므로 화승들이 존재하였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 기록으로 남아있는 것은 별로 없다. 그러나 신라에는 채전이라고 하는 국가기관에 다수의 화공들이 소속되어 국가적인 공사에 참여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통일신라시
불교의 입장과 불교미술의 입장이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볼 때 종교미술은 주관적 심적인 신앙 형태를 객관화․사회화하여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시각적 조형물이며 신앙 표본의 한 방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불교미술은 불교의 삼보, 즉 석존이라는 부처, 석존의 깨달
작품은 풍만하고 단정하여 위엄있는 몸체에, 가늘고 작은 아가리와 굵은 손잡이가 단아한 느낌을 준다.
⑦ 석굴암
▲ 석굴암의 본존불
“경주는 당시 기준으로나 현재 기준으로도 훌륭한 도시였다. 그 번영기에 창조된 훌륭한 불교미술 유산 가운데 무엇보다 석굴암을 빼놓을 수 없다. 석굴
불교가 인도에서 다른 나라로 전파될 때, 스투파, 승당, 금당, 장경각 등의 건축 양식도 함께 건너갔고 불상 조각과 불화, 불교문학 전통도 전해졌으며, 불교미술과 건축을 위한 새로운 기술들도 전수되었다. 퍼트리샤 아이헨바움 카레츠키는 1988년 이래 바드칼리지 오스카 뮌스터베르크 아시아 미술학
부처를 신격화시키는 것에 중점을 두기도 하였다. 교세의 팽창과 더불어 이러한 경향은 더욱 짙어져 갔고 따라서 탑(塔)․불상(佛像)등과 같은 숭배대상의 미술품이 조성되어 불교미술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경향을 단적으로 나타낸 것이 탑의 발생이다. 탑은 돌아가신 부처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