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의 시대이다. 하지만 이들 불교도의 예배 대상은 따로 있었다. 무불상 시대의 예배 대상은 바로 탑, 금강보좌, 보리수가 그 대상이 되었다. 약 5세기 동안의 무불상 시대가 지나고 불상이 비로소 제작되기 시작한 시기는 인도의 쿠샨 왕조의 가니슈카왕 때인 서기 2세기 초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이
초로 편년해도 좋을 정도로 고식을 띠고 있다. 비록 시대는 늦지만 구양식을 답습한 것이므로 호류지 삼존상의 계보추정에 귀중한 단서를 제공한다. 재료 역시 돌이지만 높이 43cm의 소형이어서 이동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소형 금동불처럼 미술양식 전파의 수단이 될 수 있다.
- 계유명아미타삼존불
불교가 전래된 것은 372년. 즉 4세기말경부터는 중국에서 불상들이 전래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불상들이 고구려 불상의 모델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5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고구려 불상은 아쉽게도 없다.
석불의 경우 고구려의 석불로 주목되는 것은 <청원 비중리 삼존석불 >과
불교를 배웠다. 사신과 구법승의 중 국 내왕을 통해서 부지런히 선진의 문화를 수용했고, 동시에 신라 및 일본 등지로 그들의 불교문화를 전파했다.
겸익이 인도의 구법유학에서 돌아온 것은 성왕(聖王)4년(526년)이다. 왕은 그를 흥륜사(興輪寺)에 살게 하고 28명의 고승과 함께 역경에 종사토록 했다.
명금동불입상에서 증명된다.
연가7년명 금동 여래입상은 1963년 경상남도 의령에서 출토되었으며, 주형광배와 연화대좌를 갖춘 일광삼존불(一光三尊佛) 형식에 속하지만 천불(千佛) 가운데 하나로 조성되었기 때문인지 협시보살이 없는 독존불이다.
삼국 초기의 불상으로는 드물게 머리에 나발(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