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류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국교 수립 후 양국은 꾸준히 사신을 교환하며 문화를 교류하였다. 1,500여 년을 이어져 일본 저변에 남아 흐르고 있는 백제의 문화를 자세히 알아보자.
(1) 일본 학문의 시조, 아직기, 왕인박사의 문화 전래
백제가 일본 역사에서 큰 의미를 갖는 것은 발달된 선진
교류의 바탕과 토대에 그 원류를 두고 있다. 필자는 양국사이의 문화교류 붐과 같은 현재의 상황을 이어주는 그 연결고리에 대해 보다 심층적인 연구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역사의 맥락 속에서 한국과 일본 간의 활발한 문화교류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고대 삼국시대의 백제, 고구려, 신라
사신을 교환했다.
*일본- 당나라 문화를 힘써 받아들이면서 한문학이나 불교에서도 기존의 수준을 따르고자 하였다.
2. 문화교류의 이중성
① 공동의 문어로 보편적인 문화를 수립하였다. (詩-근체시, 文-고문)
사신을 왕래하면서 국서를 전달하고 시를 주고받는 관례가 있었다. 또 외국인
사신기에서 다시 태어나고 있다.
광개토 대왕은 측근과 적을 가리지 않는 인재등용, 백성과 약자를 먼저 생각하는 우민정치, 전쟁보다는 교류로써 하나 되는 경제관념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지금까지 사극에서 비춰진 왕들의 권위적인 모습과는 다른 새로운 지도자상을 보여주고 있다. 강인한 카리스
사신기
2.1.2. ‘광개토 대왕’ 제작 의도
∙광개토 대왕의 평가: 훌륭한 CEO였으면 하는 바람. 전쟁을 통하여 땅을 얻는 것이 아니라, 교역로를 만들고 나가서 모든 사람이 풍요롭게 살 수 있게 만드는 대왕. 싸우지 않는 왕, 태왕이 원하는 정벌은 단순히 영토를 넓히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교류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