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병자호란과 남한산성의 역사적 개관
남한산성(南漢山城), 그리고 그 역사
한반도의 허리부분을 흐르는 큰 강인 한강은 예로부터 우리 민족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여왔다. 역사에서 한강을 중심으로 이곳을 점령한 나라는 번성하였고, 빼앗긴 나라는 쇠퇴하였다. 남한산성은 이처럼 중요한 위
, 국방의 보루로서, 시민들의 자연휴양림으로서, 역사적 기록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남한산성의 수 많은 역사적 사실 중에서 우리는 병자호란 속에서 우리 역사의 고난을 함께 겪은 남한산성의 역사를 중심 소재로 삼아 그 역사적 의미와 흔적을 찾아보는 것을 이번 답사의 주목적으로 정하였다.
삼아 1만 3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명을 지원하게 하되 적극적으로 나서지 말고 상황에 따라 대처하도록 명령하였다. 결국 조명연합군은 후금군에 패하였고 강홍립 등은 후금에 항복하였다. 이후에도 광해군은 명의 원군 요청을 적절히 거절하며 후금과 친선을 꾀하는 중립적인 정책을 취하였다.
학사서동 상서계수
?? [j?y?]①(분에 넘치는 것을) 바라다 ②(야심을 품고) 노리다
曲意逢迎 [q? y? f?ng y?ng]①자기의 뜻을 굽혀서 남의 의견에 영합하다 ②갖은 방법으로 남에게 아첨하다
재의는 이 기회를 틈타 분수가 아님을 노리고 한편으로 처자는 날마다 궁궐에 들어와 뜻을 굽혀 아부하며 한편으로
학사진순 초조유군신 일중재정식즉위 역사상복칭영종 소자야자연연칭영종
한편으로 대학사 진순에게 초고 조서로 여러 신하에게 유지를 내려 정오에 정식으로 즉위하니 역사상 다시 영종으로 불리니 나도 자연히 영종이라고 부르겠다.
文武百官, 再行朝謁, 由有貞宣讀諭旨, 略稱:“土木一役, 乘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