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동의 윤리 분석
서남동(이하 죽재)은 1918년 전남에서 태어났다. 그는 1941년 5월 일본 동지사 대학을 졸업했는데, 그 당시에는 자유주의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그후 1957년, 죽재는 미국 토론토 대학에서 Th.m 과정을 공부했다. 이 두 중요한 학문적 기간 사이에, 그는 목회를 하였고 한국신학대학교
Ⅰ. 개요
공동체에 있어서 교육은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이러한 교육의 방법론적인 부분은 새로운 접근을 요구한다. 학습법 중에서 신뢰로서의 진리에 대한 추구에 대한 학습법으로 합의에 의한 학습법을 소개한다. 합의란 이용 가능한 모든 자원을 사용하고, 창조적으로 갈등을 해결하기 위
1970년대 민중신학논쟁
[서남동 - 김형효의 논쟁을 중심으로...]
1. 들어가며 [1970년대 시대배경과 민중신학의 태동]
1970년대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서 격동의 10년이었다. 정치적으로 71년 4월에는 3선 개헌에 의한 첫 선거가 실시되었고, 10월에는 서울일원에 위수령이 발동되었으며, 12월에는 국가비
전통과 민중 신학.
-서남동, 안병무의 입장을 중심으로-
Ⅰ. 서 론
“민중신학”은 이제 하나의 신학사조를 가르키는 대명사가 되었다. 또한 민중신학은 한국을 대표하는 신학으로써 자리매김 하고 있다. 민중신학이 하나의 낱말이 된 것은 1979년의 일이었다.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많은 한국 지성인들
서남동의 ‘예수, 교회사, 한국교회’라는 논문에 대해 김형효가 같은 해 4월 ≪문학사상≫의 이달의 쟁점이라는 코너에 ‘혼미한 시대의 진리에 대하여’라는 글로 비판을 싣고 이에 대해 다시 서남동이 같은 해 같은 달 ≪기독교사상≫에 재반론을 함으로써 일단락된다.
서남동은 ‘예수, 교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