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우야담』은 조선 전기의 견문 잡기류의 형식인 필기에서 조선후기의 야담으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으로 문학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야담의 입장에서 그 사적인 전개를 보자면 1622년에 어우야담이 나온 이후 『천예록』과 『잡기고담』이 나오기까지 적지 않은 공백이 있었다. 최초
야담집을 엮지 않았고, 작품이 야담집에 실려 있는 것도 아니라 야담집 속의 단편들과 함께 다루기 어려운 점이 있다. 더욱이 그는 한문학의 최고봉으로서 현실을 새롭게 인식하는 방법을 두고 다채롭게 구현하기위해 전을 짓고 이야기를 수용하였을 뿐 대중들의 유희를 목적으로 하는 야담이나 소설
의인화하여 계세징인(戒世懲人-세상 사람을 경계하고 징벌함)을 목표로 하는 문학 양식으로, 고려 후기에 발달한 설화와 소설의 과도기적 형태이다. '설화'가 특정한 개인의 창작물이 아닌데 비해, '가전'은 설화의 형식에서 한 걸음 더 진보한 개인의 창작물로 소설에 한 발짝 더 접근한 것이기에, '가
4) 하층민의 소망과 시련
하층 백성의 삶이 화제가 되고 기록에 남으려면 무언가 특이한 내용을 갖추어야만 했다. 그 내역은 두 가지로 집약된다. 하나는 왕과 백성의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별나게 벌어지는 사랑의 갈등이 있다.
왕과 일반 백성은 엄격히 구별되어 쉽사리 어울릴 수 없었는데, 설화
할 수 있다.
두 가지 영웅관은 구비전승의 영역에서 여러 형태로 이어져오다가 소설에도 모습을 나타냈다. <조웅전> 같은 영웅소설은 상층의 선승을, <박씨전>은 하층의 전승을 재현했다고 할 수 있다.
김유신을 도술을 구경하고 놀라는 목격자로 등장시킨 일련의 설화도 있어 함께 다룰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