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 성리학으로'라는 사상사적 전환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 하에 진행된 것이었다.
(2) 성리학의 전래
고려말에 성리학이 들어온 것은 충렬왕을 호종(護從)하여 원(元)나라에 갔던 안향(安珦)이 《주자전서(朱子全書)》를 가져와 연구하기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 후 성균관의 유학자들에게
사상적으로 원나라로부터 들어온 관학화된 신유학인 즉 성리학의 소양을 쌓은 지식인 계층이었다. 이들은 고려말 점점 중앙에 진출하여 그 세력이 확대되고 있었고, 성리학사상의 실천을 통해 고려말의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수습할 수 있는 새로운 국가 운영 시스템, 사회 기강과 질서를 수립하고
사상은 김장생, 정엽, 조헌 등에 계승되어 기호학파 형성하고 이이, 성혼 계열은 서인에 가담하였다. 율곡의 학풍을 이어받은 김장생, 송시열 등은 기호의 서인에 소속된다.
성리학의 교육 목표는 存心養性(항상 선량한 마음을 가지고 천부의 본성을 잘 기른다는 뜻)과 窮理(도리를 궁구한다, 즉 지식을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율곡과 조광조의 사상은 공통점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학문관,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확신, 왕도정치의 실현가능성에 대한 믿음, 인재등용 제도 확충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언로개방에 대한 주장 등이 그 예라고 볼 수 있겠다.
Ⅲ. 율곡 이이의 독자적인 사상 체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