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히트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연극관을 부정하면서 소외의 개념으로부터 브레히트가 기한 연극에서의 소외효과는 단순한 연극기법이 아니라 관객으로 하여금 무대에 대해 거리와 이성을 가지고 분석적이고도 비판적인 태도를 갖도록 함으로써 적극적으로 현실변화에 참여케 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셰익스피어 시대 이전까지는 엄격하게 지켜졌으나, 그 뒤 허물어졌다.
⑴ 시간의 일치 : 하루를 넘지 않아야 한다.
⑵ 장소의 일치 : 한 장소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⑶ 행동의 일치 : 완결되고 일정한 길이의 행동이어야 한다.
2. 시학의 부활
1) 르네상스 시대의 시학
시학은 르네상스 시대에 재
연극 세계』를 기준으로 하였다. 첫 제목만 각주를 달고 뒤의 주석은 모두 생략했다. 『이기주의자 요한 파처의 파멸』의 제목 번역은 『브레히트』를 참고하였다.
구동독의 유명한 거성(巨星) 하이너 뮐러(Heiner Müller)는 1929년 1월 9일 독일 작센(Saxon)주의 작은 공업도시인 에펜도르프(Eppendorf)
브레히트는 고독한 작가적 삶과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을 찾기 보다는 분주한 활동을 찾았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대도시의 정글, 사람들과의 교제, 자신의 작업이 공적으로 속히 인정받는 것, 많은 협력자들을 좋아했다. 그는 연극이나 영화에서 필요한 공동작업을 이미 텍스트-생산 자체에 적용하였다
연극 감상은 ‘허구적 감상’이 2/3을 차지하고 있었다. 서양극의 출발점이 된 아리스토텔레스의 극 이론은 그리스 로마를 거쳐 이태리 르네상스, 프랑스 신고전주의 시대에 이르기 까지 수정, 보완을 거쳐 오랜 세월동안 지속되어 왔다. 그러나 20c에 이르러 독일의 브레히트는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