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라이에르마허 만큼 상반된 평가를 받는 신학자도 없을 것이다. 그는 19세기의 교부로, 또는 현대 신학의 아버지로 인정받는 반면, 19세기의 대이단자로도 비판받고 있다.
특히 칼 바르트의 입장이 그러하다. 그는 슐라이에르마허가 신학을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연구가 아닌 인간의 종교성에 대한
연구해 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본 논문을 포스트모더니즘을 정확하게 이해하려고 시도했으며,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인간론을 파악하고, 그 위협적인 인간론에 대해서 칼빈적인 대안을 제시해보려고 했다. 성경의 진리로 시대를 진단하고, 진리를 재해석하는 문제를 통해 기독교적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은 종교 개혁적 전통에 대한 도전으로 나타난 운동이다. 신앙, 은총, 그리스도, 성서 중심의 종교개혁 전통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이성 중심의 철학적 영향과 자연과학적 발전에 힘입어 이성적, 합리적 신학 해석을 도모하였다. 이것은 경건주의 운동과 서로 갈등을 일으켰다.
1. 들어가는 말
처음 감리교 신학대학원에 입학했을 때 소위 성서 비평과 관계된 강의에 참여하면서 우리는 모두 적지 않은 충격에 휩싸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역사적 예수연구, 토착화 신학, 다원주의 등 이름도 생소한 이론들을 접하면서 지금까지 쌓아 올린 신앙의 공력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아픔
국가주의 교육의 발달
교육은 국가가 관리해야 하는가? 교회가 관리해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해 유럽에서는 오랫동안 교회가 담당해야 한다는 사고가 지배해 왔다. 따라서 중세 이래로 유럽의 학교는 종교적인 학교들이었고, 교육은 종교적인 일이었다. 따라서 교회가 교육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