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剝製)가 되어버린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 맑소. 니코틴이 내 횟배 앓는 뱃속으로 스미면 머릿속에 으레 백지가 준비되는 법이오. 그 위에다 나는 위트와 패러독스를 바둑 포석처럼 늘어놓았소. 가
1. 이상을 이야기하며
이상은 흔히 난해한 작품을 남긴 채 요절한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전까지는 소설에 비해 시 텍스트가 더 익숙했기에 수업을 통해 그의 소설과 생애에 대해 더 알아보고자 했다. 많은 수가 아닌 이상의 작품을 좀 더 폭넓게 다루어 보고자 작가의 짧은 생애의 시기 별로 작
(5) 오감도(烏瞰圖)
김기림 박태원의 소개로 곧 이태준에게 그가 발탁되었다. 1934년 여름 7월 24일부터 8월8일까지 연재된 첫 국어시 <오감도>는 <조선중앙일보>를 통해서 파천황의 논란이 쏟아지게 만들었다. 이태준은 학예부장으로 있으면서 이상의 시 <오감도>를 연재함으로써 이른바 이상 신화를 제
이상에 대하여 말하고자 결정했을 때, 가장 먼저 봉착한 문제점은 과연 이상이라는 작가와 그의 작품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였다. 이상이라는 작가가 현재 한국문학사에서 점하고 있는 위치와 위상, 그리고 그러한 외면적 지표 아래로 두터운 해석의 역사를 발생시킨 그 작품의 난해성이란 우리가
이상의 본명은 김해경이지만 공사장에서 인부들이 "리상, 리상"하고 부르는 바람에 예명을 스스로 '이상'으로 정해 버렸다. 이상은 공업전문학교를 졸업한 공학도였고 직장도 좋았지만 지병인 폐병으로 그만두게 된다. 이상은 1931년부터 작품을 쓰기 시작하다가 6년이 지난 37년에 죽었다. 사실 이상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