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말
전 세계 나라에서 20세기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기 위한 거대한 행사가 열렸다. TV중계 프로그램을 보거나 또는 당일 행사장에 있었던 사람들 모두 자신이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는 세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에 흥분되고 감격스러웠을 것이다. 새천년은 이렇게 지구상에 살
식민지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 같은 상황은 사람들에게 절망감을 안겨주었으며, 중국인들은 새로운 중국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변혁뿐 만 아니라 의식적인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신문화운동이 일어났다. 지식인에 의한 문화혁명이라 불리는 五·사운동은 군벌정치와 제국주의의
식민지인 청도와 연변지역을 점령하게 되었다. 이후 일본은 중국을 사실상 일본의 단독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내용의 소위 21개조의 요구를 제시하였고 최후통첩으로 그 수락을 중국정부에 강요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서방의 견제 세력이 없던 중국은 이를 수락하였고 이것은 중국민들에게 거세
신문화를 받아들였다는 데 있다. 미술의 경우 서양의 미술서적이 상당수 번역되었던 중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일제시대에 한 권의 미술서적도 번역된바 없었다는 것은 이러한 사실을 증명한다. 대부분의 미술인들은 주로 일본 미술서적을 읽거나 일본화집 등을 뒤적거리면서 서양미술을 이해했
식민지의 현실표현과 민족의식을 표현하는 문학이 발달하였다. 그리고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아 신경향파 문학이 등장하였고, 민족주의 계열의 국민문학이 등장하였다. 마지막으로 일제치하 1930년대 말부터 1940년대 초이다. 이때는 문학의 암흑기에 해당하는데 신문이 모두 폐간되고, 말조차 빼앗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