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의 정치와 문화를 정리한 《연려실기술》을 저술하였다. 한치윤은 《해동역사》를 편찬하여 민족사 인식의 폭을 넓히는 데 이바지하였다. 이종휘의 고구려사 연구와 유득공의 《발해고》 저술은 고대사 연구의 시야를 만주 지방까지 확대시키는 데 기여했다. 또한 김정희는 《금석과안록》
실학파의 맹아기라 할 수 있다.
18세기에는 17세기에 싹텄던 실학적 문제의식과 사상적 요소들이 정리되어 실학파의 학파적 성립을 보게 된다. 성호 이익을 중심(大宗)으로 하고 권철신 · 이가환 · 안정복 등이 주축이 되어 제도개혁론을 주장하는 18세기 전반의 성호학파와 청나라의 문화와 청에 들
실학이 사변적 요소를 전혀 배제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실학자들은 경험적이며 실험적인 방법을 존중하고 있었다.
또한 실학은 조선 후기 사회의 발전에 직접적 영향을 줄 수 있었던 사상이었다. 실학자들이 주장한 제도개혁론은 그 일부가 국가의 정책에 반영되어 민중생활의 향상에 이바지했다.
교우관계가 각별했으며, 서유구(徐有榘)·유비(有棐)형제와도 교류가 있었다. 최한기(崔漢綺, 1803~1877)는 서구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와 통상개방론을 주장한 인물로, 조선의 개화정책 방향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외국과의 대등한 교류를 주장하는 등 실학파 학자들의 전통을 계승하여, 뒤이
실학사상의 양상, 마지막으로 시조의 변이로 인한 사설시조의 등장 과정의 네 가지 부분에 초점을 두어 심화적인 논의를 진행하였다.
Ⅱ. 전문 요약
9.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문학-제1기 조선후기
9.1. 민족 수난에 대응한 문학
9.1.1. 시대변화의 계기
임진왜란 이후의 조선후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