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억의 시를 살펴보면서 그 문학적 관계에 관심을 초점을 맞추었다. 어린 소월이 시작에 관심을 갖게 이끌어 준 것도, 그의 시재를 알아본 것도 바로 안서김억이라는 점을 볼 때, 김소월이 김억을 많이 의지하고 영향을 받았을 것이란 것을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하여 본문에서는 김소월과 김억
김억김억(金億, 1896~?) 호는 안서(岸曙), 호적명은 희권(熙權), 평북 관산 출생으로 오산중학을 거쳐 일본 게이오의숙(慶應義塾)문과 중퇴. 오산중학 및 평양 숭덕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하고 오산중학에서 김소월을 발견하여 지도했다. 1920년 《폐허》지의 동인으로 참여. 《동아일보》,《매일신보》기자
1920년대는 한국 문학이 본격적인 근대 문학의 형태를 갖추고 내용적으로도 개인과 현실의 다양한 측면들을 심도 깊게 다루기 시작한 시기라 할 수 있다. 1920년대 우리의 문학계는 근대시 중에서도 자유시(自由詩)의 시발점이며 나아가 다음세대에 전승시킬 싹이 돋아난 시기이므로 이 기점의 설정과 출
Ⅰ. 순수시인 박두진
시인. 호는 혜산(兮山). 경기도 안성출생. 1939년 <문장>에 <향연>, <묘지송>, <낙엽송>, 이듬해 <의(蟻)>, <들국화>가 각각 추천되었다. 그 후 <도봉>, <별>, <푸른 하늘 아래 >, <설악부>, <장미의 노래> 등 수작을 발표하였다. 이 시인을 시단에 내보내면서 선자 정지용은 “박군의 시적 채
Ⅰ. 개요
김억은 그의 다양한 문학 활동 중에서 무엇보다도 번역을 중시하였다. 현재까지 김억과 서구 문학의 관계를 다룬 연구는 김억의 외국문학 수용 양상과 그 단계를 해명하는 데 중점을 두어 많은 성과를 남겼다. 이들 연구는 그가 한국근대시를 형성·개척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 인물이라 지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