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1930년 1월 『조선지광』에 발표되었는데, 폐렴으로 세상을 떠난 아들을 애도하여 쓴 시이다. 권정우, 정지용의 「정지용 시집」을 읽는다, 도서출판 열림원, 2003, p71.
아들의 죽음을 노래하면서도 아들을 잃은 슬픔을 극도로 절제하는, 즉 감정의 절제를 보여주고 있다.
서정적 자아는 유리창에
시한다 해도 자신의 사랑은 변함없이 그대로 유지 될 것이라는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2연에서는 자신의 사랑을 ‘한없는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렸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대를 진실로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화자는 다시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라고 말하
시를 이야기 할 때 가면을 쓰고 이야기 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 시적 자아, 서정적 자아, 서정적 화자, 상상적 또는 가상적 자아 등으로도 불리는 화자라는 장치는 모든 시에 존재하며 모든 시에 작용하는 필수적 조건이다. 화자가 시 속에서 어떻게 설정되어 있느냐에 따라 언어표현적인 방법과 어조
시 쓰기로 가능했다.
박남철의 기독교에 대한 신성모독이 종교일반과 신성성 일반에 대한 모독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반기독교적 지평으로서 제국주의적 서양문화를 비판하며 미국의 정치․경제적 이익에 일치하는 ‘국가이성’의 체제를 비판하는 것이다. 물론 패러디가 악마적 이미지의 중심
시월 비 어두운 산허리 따라 넘치는 그리움으로 강물 저어 가네.
만나겠네. 엉겅퀴 몹쓸 땅에
살아서 가다가 가다가
허기 들면 솔잎 씹다가
쌓이는 들잠 죽창으로 찌르다가
네가 묶인 곳, 아우야
창살 아래 또 한 세상이 묶여도
가겠네, 다시
만나겠네.
우리 이렇게 밤새워 솔아솔아를 목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