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열은 율곡 이이를 정통으로 이어받아 조선성리학을 심화시키고 현실에 적용하여, 조선후기 영정조 문예부흥을 이루는 근간이 되게 하였던 사상가였다.
송시열을 둘러싼 논쟁은 아주 다양하다. 60년대 70년대에 평가한 조선후기의 모습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나라가 피폐해졌는데도 지
유학 사상이 등장
2> 백호 윤휴(白湖 尹鑴)와 서계 박세당(西溪 朴世堂)의 탈주자적 경전 해석은 집권 세력인 노론의 영수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이 격렬하게 비판
(2) 백호 윤휴
1> 주자의 경전 해석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한나라 시기의 주석과 해설을 참조하여 독자적인 입장을 펼침
학문적 의견을 나눈 성운(成運, 1497~1579)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성운은 노장적 학풍의 소유자로 임제뿐만 아니라 윤휴의 학문 형성에도 일정한 영향을 주었다. 허목의 학문적 연원에 성운에서 임제로 이어지는 흐름이 있다는 점과 윤휴의 학문세계에 성운의 영향력 등을 고려하면 결국 허목과 윤휴의 학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국사학파의 일선동조론과 같은 관변사학을 넘어 세계사적 보편성과 특수성을 적용시켜 일본사회의 선진성과 주변사회의 정치경제적 낙후성을 주장하는데, 이는 이름바 정체성론(停滯性論)과 타율성론(他律性論)으로 구체화되어 학문적으로 상당히 공고화되기에 이른다.
세계를 중요시하는 주기론이며, 다른 하나는 이언적을 선구자로 하면서 원리적 문제를 중요시하는 주리론이다. 이 두 학자의 뒤를 이어 조선 성리학을 대성한 사람은 이황과 이이였다.
이이는 주기론의 입장에서 관념적 도덕 세계를 중요시하는 동시에, 경험적 현실 세계를 존중하는 새로운 철학 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