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열을 둘러싼 논쟁은 아주 다양하다. 60년대 70년대에 평가한 조선후기의 모습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나라가 피폐해졌는데도 지배층은 민생을 돌보지 않고 주자학을 고수하며 당쟁을 일삼고 이로 인해 조선이 망했다는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고, 이의 주역이 우암송시열이었다고 평가하
주자학적 유학의 발전
(1) 배경
1> 17~18세기, 주자성리학이 뿌리를 내리고 교조화되는 흐름과 맞물려 실학, 양명학, 탈주자적 경전 해석 등 반주자학적 유학 사상이 등장
2> 백호 윤휴(白湖 尹鑴)와 서계 박세당(西溪 朴世堂)의 탈주자적 경전 해석은 집권 세력인 노론의 영수 우암송시열(
1. 송시열의 생애와 정치
1) 출생에서 호란의 치욕까지
송시열(1607~1689)은 조선 14대 왕인 선조 40년(1607년) 충북 옥천에서 송갑조와 곽씨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본관은 은진이고 자는 영보이며 호는 우암이다. 어려서 아버지에게 학문의 기초를 배우다가 8살 때 부친의 이종인 송이창의
송시열이란 한 인간이 그때까지 걸었던 고집스런 생애를 화폭에 담으려고 노력한 것으로 보여 진다.
‘우암송시열’ 그는 조선시대 학자이자 정치가이다. 그의 이름 앞에는 대(大)라는 접두사 가 붙는데 그의 학문과 정치가 고명하고 고결했다는 뜻은 아니다. 즉 대라는 접두사를 붙여야 할 만큼 학
1. 전개 방향
주역의 내용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내용인 ‘만물은 고정되어 있는것이 아니라 항시 변한다’는 내용을 전제로 하여서 우리 민족정체성의 형성과 그 변천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하였습니다. 기본적인 전개 방향은 역사적 흐름을 통해서 민족정체성의 변천을 알아보고자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