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으로 몰고 오는 상황에서 조선사회는 존폐위기(存廢危機)를 맞게 된다. 이러한 사회적인 불안감으로 인해 민중종교가 출현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민중종교는 구원(救援)의 문제를 화두(話頭)로 등장시킨다. 이러한 민중종교의 보급에 가사가 가장 커다란 역할을 하였으며, 모든 문학 장
감정발산을 위주로 하던 비작위적이고 자연발생적인 노래ꡓ 등이 그것들이다. ①은 현재 신화의 형태로 잔존해 있거나 서사문학으로 발전되어 갔으니 이 글에서 더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②는 상당부분 ①과 같은 양상을 보이거나 ③의 일부로 흡수되어 그것과 함께 근대 이전의 이른바 고전
가사와 단가를 지었다. 1589년 우의정으로 발탁되어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을 다스리게 되자 서인(西人)의 영수로서 철저하게 동인 세력을 추방했고, 다음해 좌의정에 올랐으나 1591년 건저문제(建儲問題)를 제기하여 동인인 영의정 이산해(李山海)와 함께 광해군(光海君)의 책봉을 건의하기로 했다
와 국민의 관계(국가에 있어서의 백성의 도리) - 어진 정치
백성의 입장에서 위정자들이 그들을 위해 헌신함을 알고, 나라가 자신들의 의지처이자 안식처임을 강조함으로써 백성들에 대한 계몽적 각성을 유도하고 있다.
③ 결(9-10행, 낙구) : 각자 본분 충실 →국태 민안(國泰民安)의 염원
(낙구 첫머리
가사가 압도적이다. 때문에 ‘강호가사’는 의의가 높다고 평가받는다.
때문에 본 발표에서는 이처럼 사대부들의 이념과 대상에 대한 인식이 조화롭게 그려지고 있는 ‘강호가사’에 대하여 형성배경과 그 발전양상, 그리고 주제별 작품을 살펴보고, ‘강호가사’가 갖고 있는 문학사적 의의를 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