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를 받아들인다고 할 수 있다.
- ③ 현실의 거울인 공포영화
괴물이나 귀신의 존재가 흉하고 그들의 잔혹한 행동만으로 우리를 공포에 빠지게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19세기초에 발표된 메리 셀리의 『프랑켄슈타인』이 신의 영역에 도전해 잘려진 서로 다른 신체를 조합해 만든 인간의 외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과 연결되어 있다.
이 작품은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데뷔작으로 특수효과와 갑작스러운 장면의 전환, 귀를 자극하는 소음이나 음향 등의 전형적인 공포물의 표현 문법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야기의 힘만으로 공포의 경험을 구축해 나간다.
그들이 서로 물어뜯고 할퀴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 이었는가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이 추구하는 목적을 이루어 냈을까요? 그건 아니었을 거라 봅니다. 영화에서도 봤듯이 두 남자주인공은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후회를 하고 서로가 동지였음을 깨닫게 되는데요, 그들의 행동이 정당했는
* 출처 : 한국은행
작품 전개상 필연적인 폭력의 미학인가, 아니면 단지 흥행을 위한 자극적 이미지일 뿐인가. 최근 지나치게 잔혹하고 폭력적인 장면이 한국 영화에 넘쳐나고 있다. 영화 속 잔혹코드는 이제 ‘폭력의 미학, 미학의 폭력, 비틀린 미의식’이라고 치부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 수위이
그들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소리없이’ 지고 말았다. 정부의 여론 조작 앞에 다른 지역의 민중들은 그 유례없는 폭력의 현장을 한낱 풍문으로만 전해 들었을 뿐이다. 때문에 소녀가 직접 마주한 폭력과 억압이 어떻든 간에 그녀는 주목 한 번 받지 못하고 ‘소리없이’ 떨어진 ‘한 점 꽃잎’에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