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러에 따르면 예술이 될 수가 없다. 그것들은 미적인 가상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총체성을 형성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의도한 목적을 위해 인간의 ꡒ정서 Gemutꡓ를 왜곡시킬 뿐이며, 이에 인간 소외라는 결과만을 야기하게 된다. 예술이 스스로를 ꡒ미적 유희ꡓ로서
Ⅰ. 독일문학의 배경
체계이론적 문예학의 입장에서 문학의 특성과 존재방식을 설명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학을 준거이론으로 삼는 대신 예술과 문학도-예술, 문학 외의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사회적 영역으로 간주하는 사회이론의 필요성이 강조된다. 체계이론의 시각에서 보자면 문학이나 예
보았으나 졸업후에 쉴러의 잡지에 기고함으로써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시작하였다. 1796년에는 29세에 예나대학 강사가 되었고 2년 후 1798년에는 同校 부교수에 승진하였으나 나중에 동생 프리드리히가 쉴러와 충돌하게 되어 그와 함께 잡지 을 간행하여 뚜렷하게 낭만주의운동을 전개했다.
Ⅰ. 프리드리히쉴러(실러)의 사상적 배경
쉴러는 ‘루드비히 라전어학교‘에 다닐 때부터 칼 군관학교의 전신인 ‘군관-보육학교’에 입학하기까지(1768-1773) 수년 동안 경건주의에 젖어 있는 어머니로부터의 강한 영향 하에 정통주의적 기독교의 폐쇄적 세계관에 접하게 되었다. 그러한 세계관에서
1. 낭만주의의 어원
새로운 의미를 가진 ‘romantic'은 독일의 괴테 Jogann Wolfgang von Goethe와 쉴러 Friedlich von Schiffer가 클래식 classic에 반대되는 의미로 썼음을 알 수 있다. 쉴레겔 August W. von Schlegel은 <실재의 체험하는 현대적 태도>라는 광의의 뜻으로 설명한다. 스탈부인 Mme de Stael도 쉴레겔의 의미를 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