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궁정화와 하나로 결합됨.
ㄷ) 화성 오도자의 <송자천왕도> <그림7>
ㆍ‘오대당풍’ -활발하고 힘있게 방향을 트는 필선
ㄹ) 사녀화 <그림 8>
ㆍ당 현종 이후 국력이 기울어 힘찬 그림 대신 미인화가 등장. 장훤과 주방.
ㆍ궁정 여성들의 다채롭고 아름다운 생활이 주 내용.
ㅁ) 문인화
오도자(吳道子, 670?-760?)의 인물화에서 나타났다. 오도자는 대상을 선과 공백으로만 표현하여 인물과 옷의 윤곽을 묵선으로 나타내는 백묘법(白描法)을 구사하여 왕유(王維, 701-761)에 앞서 수묵화를 그린 것으로 보고 있다. 오도자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왕유는 수묵화가 중심이 되는
당대의 회화는 문학작품이나 도기화를 통해 풍만한 당대 회화를 짐작할 수 있으나 남아있는 작품은 많지 않다.
초당기에 염입덕, 염입본 형제와 서역에서 온 위지을승, 화려한 궁중인물화를 그렸던 주방 등이 인물화를 발전시키는데 공헌하였다. 그밖에 불교회화에 오도자, 북종화의 창시자로 알려진
오도자(道子) 등과 함께 중국 남종화(南宗畵)의 개조(開祖)로 여겨지고 있으며, 전문적인 화가가 아니라 시인이나 문인들이 그리는 문인화(文人畵)의 발달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인물이나 꽃, 대나무, 산수(山水)의 정경 등 다양한 소재를 그림으로 나타냈는데, 특히 수묵(水墨) 산수화(山水畵)로
오도자(吳道子)가 그린 것인데, 그 속의 공자는 허름한 옷을 입고 두 손을 모으고 서 있다. 그의 이마에는 온갖 풍상을 겪은 듯 주름이 깊게 새겨져 있으며, 언제나 사람들을 교화하느라 지혜로 충만한 눈빛에는 고생에 지친 기색과 도처에서 겪었던 서러움도 드러나는 듯하다. 그러나 늘어진 수염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