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진 현학과 신도교
Ⅰ. 현학(玄學)
1. 현학의 배경과 의미
1) 위진 시대 사상의 변화
한나라가 몰락하고,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 혼란스러운 가운데 한대(漢代)의 통치이념이었던 유학의 명분과 이념은 지켜지기 힘들었으며, 바뀐 위 왕조는 한나라의 몰락을 잘못 이해하고 구품중정법 위나라
말살하면서 위 왕조 찬탈 계획을 추진했다. 태시 원년(265년) 모든 준비가 갖추어지자 사마염이 즉위하여 위 왕조를 멸하고 서진(西晋) 왕조(265~316)를 세웠다. 위진 왕조가 교체되는 이 험난한 시기에 이른바 ‘죽림칠현(竹林七賢)’이라고 불리는 일곱 인물이 나타난다.
♣‘죽림칠현’ 그들은 누구
위진시기에 들어서면 이들의 모습은 청담(淸談)으로 나타난다.
그들은 {노자}, {장자}, {주역}의 삼현(三玄)을 중심으로 완곡한 풍자를 통해 자유로운 본성을 추구하는 경향으로 나아갔다. 그런 대표적인 인물들이 죽림칠현(竹林七賢)이었다. 친구들에게는 청안(靑眼)으로 대하고 세속인들에게는 백안(
문화적 기풍을 뜻하는 말이다. 하안 왕필 죽림칠현(竹林七賢)등이 이때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의 현학적 풍조를 형성 하였다. 그 당시 문벌사족을 대표하던 지식인들은 『老子』『莊者』 『周易』을 합하여 삼현(三玄)이라고 칭하고 이것을 위진 시대의 학자들이 필히 읽어야 할 책이라고 하였다.
1. 왕소군의 유적을 찾아서
박한제 교수는 박사학위 논문부터 지금까지 연구주제가 유목민족인 호족과 농경민족인 한족의 관계를 다루는 소위 ‘호한체제’ 라는 것이어서 왕소군 뿐만 아니라 역대 왕조 무덤 위주로 기행을 했는 듯하다.
처음에 왕소군을 찾아서를 읽었을 때 왕소군이 남자인줄 알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