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본고에서는 윤선도가 정치적 격변기를 겪은 후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산중신곡(山中新曲)》의 작품 중 일부를 다루고자 한다.
《산중신곡》이 모두 몇 편의 연작인가는 학자에 따라 견해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이재수, 문영오는 <증반금(贈伴琴)>이 가첩 《산
위·시문이위의 도본문말론에 입각했으며, 창작론에서 서정시의 영역까지 확대시켜 나간 점 등은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셋째로 고산은 자연시인이라 할 정도로 자연을 제재로 한 작품이 많았고 자연을 생활화하였으며, 자연을 문학적으로 접근하는 방법 또한 다양하였다. 그의 작품 속에는 자
위상 연구
고산은 윤유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큰집에 손이 없어서 종손으로 양자를 갔다. 윤선도의 양부는 윤유기다. 지금 해남에는 해남 윤씨 종갓집과 그 유품들이 박물관에 잘 보관되어 있는데, 이곳이 윤선도의 본가이다.
그가 30세 때에 이이첨의 무리들이 광해군을 업고 나라를 어지
생애에 관해 직설을 피함으로 문학적 수준을 높이려고 하는 동시에 독자(혹은 청자)의 머릿속에 구체적인 어부의 형상을 떠올리게 해주고 있으며, 또 '이렁구러'라는 시어를 통해 풍류적인 삶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이 밖에도 다음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여 작품 전반에 걸쳐 시의를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