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은 理는 하나 뿐으로 무형․무위한 특성에 의하여 불변의 보편자의 성격을 가지는 반면, 氣는 유형․유위한 특성으로 개별적 차별상을 가진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무형과 유형의 외적 차이는 이의 통용성과 기의 국한성을 설명하는 기준이며, 또한 무위와 유위의 작위성을 근거로 기발리승
사단칠정논쟁 정이천은 희ㆍ노ㆍ애ㆍ락ㆍ애ㆍ오ㆍ욕의 7정을 인의예지신의 성과 직접 결부시켰다. 훗날 중국에서는 아무도 이것이 내포하고 있는 철학적 문제점을 지적해주지 못했다. 한국 성리학의 사단칠정 논변은 바로 이 문제에서 비롯한다.
정이천의 성정론을 이어 완성시킨 주자의 정이론에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율곡과 조광조의 사상은 공통점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학문관,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확신, 왕도정치의 실현가능성에 대한 믿음, 인재등용 제도 확충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언로개방에 대한 주장 등이 그 예라고 볼 수 있겠다.
Ⅲ. 율곡이이의 독자적인 사상 체계
인물로 부상하였다.
그동안 《동호문답(東湖問答)》, 《만언봉사(萬言封事)》, 《성학집요(聖學輯要)》 등을 지어 국정 전반에 관한 개혁안을 왕에게 제시하였고, 성혼과 '이기사단칠정인심도심설(理氣四端七情人心道心說)'에 대해 논쟁하기도 하였다. 1576년(선조9년) 무렵 동인과 서인의 대립
사단칠정논쟁과 더불어 조선 성리학을 특징짓는 양대 논쟁이 될 만큼 중요한 논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2.본론
(1) 논쟁의 발단
한국에서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에 관한 논쟁은 율곡이이(栗谷 李珥, 1536~1584)에서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1607~1689)로 이어지는 기호학파의 수암 권상하(遂庵 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