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이육사의 약력과 업적
이육사(李陸史)는 (1904-1944) 시인이며 독립운동가이다. 본명은 원록(源綠)이고 별명은 원삼(源三) 그리고 후에 활(活)로 개명하였다. 경북 안동군 도산면 원촌리에서 가호의 둘째 아들로 출생하였다. 배문의숙에서 신학문을 배우고, 대구 교남 학교에서 잠시 수학(修學)하였고 1
시인이다.
그의 독립 투쟁의 생애(生涯)가 시인으로서의 생애를 압도하여 오히려 그의 시의 본질을 왜곡 당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올 만큼 그는 삶과 하나된 민족 시인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 준다.
1933년 『신조선(新朝鮮)』에 처녀작 <황혼>을 발표한 이래 육사의 시작(詩作) 생활은 만 40세로 죽을 때
이육사의 시는 우리 시문학사상 아주 독특한 색채를 지니고 있어 많은 평자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육사의 시가 지니는 그런 특성이 유교적인 문화 배경과 관련이 깊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육사 시의 특성을 다룬 논의는 대부분 유교라는 일반적인 개념을 확인하는 정도의 피상적인 수준에
이육사라는 필명은 이때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어 받은 수인 번호 '264'의 음을 딴 '二六四'에서 나왔으며, 또 다른 필명으로 이활(李活)이 있다. 문단 등단 시기는 『조선일보』에「말」을 발표한 1930년이며, 언론인으로 일하면서 중국과 대구, 경성부를 오가면서 항일 운동을 했다. 그동안 대구 격문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