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통역관 출신으로서 당시의 현실적 상황을 민첩하게 파악할 수 있었던 그가 당시 한국적 현실을 “가장 실리적인 측면에서 파악한 탓”으로 보았다. 김윤식, 「개화기 소설의 문제점」, 『한국현대소설사연구』, 민음사, 1984, 34 쪽.
1900년 2월, 서얼 후손 이인직은 관비 유학생으로 뽑혀 일본
김관일과 옥련이 재회하면서 옥련의 어머니는 죽은 줄만 알았던 옥련의 편지를 받고 기뻐한다. 편지를 받기 전에 흉조인 까마귀가 울고 있는 설정을 해놓았는데, 이는 옥련의 어머니가 옥련의 편지를 받고 좋아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반어적 기법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이인직이 신지식인이라는 것
모색함에 있어 민중으로부터의 개혁이 아닌 위로부터의, 즉 배운 자들−상류계층으로부터의 개혁을 논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다음은 「혈의 누」에서 구완서가 말하는 내용이다.
우리들이 나라의 백성되었다가 공부도 못하고 야만을 면치 못하면 살아서 쓸데있느냐. 너는 일청전쟁을 너 혼자
사람 없는 집은 집도 점령하고 물건도 점령하는 법이라, 그런고로 군사들이 빈 집을 보면 일삼아 들어간다. 김씨 집에 들어와서 보는 군사들은 마루 끝에 부인이 누웠는 것을 보고 도로 나갈 뿐이라. 이인직, 『혈의누』, 문학과지성사, 2007, p18.
전시국제공법을 지키며 전쟁을 한 일본과 그렇지 않
일본 유학을 갔고 1903년 일본정치학교 졸업 후 일본 육군성 한국어 통역에 임명되어 노일전쟁 (露日戰爭) 당시에 1군사령부에서 종군하였다. 1906년 <국민신보> 주필을 거쳐 <만세보> 주필로 옮기고, 1907년 이완용의 도움으로 <대한신문>을 창간하여 사장으로 옮긴 후 이완용의 비서를 지냈다. 우리나라 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