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사대가의 마지막 두 사람 이식과 장유가 마련했다.
이식과 장유는 외교활동이나 이념 수립의 과업의 과제에는 관여하지 않고 문학 그 자체를 한층 더 존중하며 산문도 시에 못지않은 예술품일 수 있게 했다. 그래서 이룩된 작품은 현실의 문제의식을 되도록 배제하고 고답적인 취향을 구축하는
한문학 4대가 양란 이후 조선 전기의 순정문학(醇正文學)을 이어받기 위한 사대부들의 노력이 실학의 거센 도전 속에서도 행해졌는데 그 결과로 나타난 이들이 한문학 4대가들이다. 월사이정구, 상촌 신흠, 택당 이식, 계곡 장유가 그들이다.
⑵ 실학파 문학
① 경세치용학파 중농주의를 취한 사람
한문학 분야의 정신적 지도자 역할을 하였으며 망명지 중국에서는 우리나라 한문학을 중국에 소개하는데 진력하는 한편 그와 교유한 남방의 문인들로부터 양계초(중국 청말 중화민국 초의 계몽 사상가이자 문학가)에 필적하는 대가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문인들의 충절에도 불구하고, 기울
전기
- 건국초기문사 : 최응, 최언위, 최승로
- 신진문사 : 경전을 바탕으로 문장 수련,
- 조탁에 의한 정서 표현이 충실한 시가들,
왕실 주도하 화려한 사조 중심 공리적 귀족문학
+ 일부 처사문인들의 초세적 시문학
4대 문벌문사 : 최충, 이자연, 김부식, 최유청
정지상: 고려 전기 문예적
계층이 중앙 정계에 등장하여 일정한 역할을 담당한 것은 12세기 고려 무신 집권기 이후이다. 그 후 고려후기에 이르러 이들은 정치적, 사회적 기반을 확고히 하고 중앙 정계에 자리 잡아 사대부층이 형성되었다. 조선이 이들에 의해 개국되면서 ‘사족’이나 ‘사대부’는 양반 지배층을 지칭하는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