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지양하고 선험적 총체성의 시대를 지향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선험적 총체성의 시대로의 지향을 끊임없이 좌절시킨다. 소설의 문제적 개인들은 이러한 현실의 문제를 인식하고 그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게 된다. 이청준 역시 이러한 공동의 목표
소설가의 소설쓰기에 관한 고뇌를 모두 포함하여 그것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치유하고 회복하고자 하는 일이다. 이청준의 소설세계는 질병을 치유하고 퇴원하고자 하는 갈망으로 압축될 수 있으며 ‘퇴원’을 향한 갈망은 소설가의 소설쓰기에 있어 ‘무엇을, 어떻게, 왜 쓰는가?’를 진단하고 그 대
이청준, 「매잡이」, 『잔인한 도시』, 열림원, 2010, p.89
오십 살이 될 때까지 오직 ‘매잡이’라는, 매를 이용한 사냥을 하는 일로서 삶을 살아오던 ‘곽서방’은 이 전라도 산골 마을에도 자본주의의 손길이 뻗치자 위와 같이 ‘천덕구니’ 신세로 전락하고야 만다. 옛날 매잡이들의 단골 주인으로
세계가 충돌하며 하나로 녹아들어있다. 때문에 이는 이청준 작품세계의 원형질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문흥술, 「말의 소리화와 존재의 집: 이청준」,『문학의 본향과 지평』, 서정시학, 2007, p.156~157
이청준은 생전에 ‘문학은 삶의 언어적 존재, 언어적 실체’라는 문학관을 바탕으로 작품을 썼
문학에 대한 성찰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남혁은 이청준의 소설이 고향을 탐색하고 결국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지향한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윤지욱이 말을 찾는 과정은 고향으로 대변되는 과거의 자아와 현재의 자아가 분열되지 않고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