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및 신앙의 통일이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자, 이러한 대세를 타고 주자학을 더욱 이도하여 마침내 조선에서 유학이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도록 한 학자가 바로 이황이다. 그리고 이황에게 학문의 도를 물었으나 그의 학설에 안주하지 않고 이른바 심성론에서 다른 경해를 수립한 학자는 이이이다.
12인 중 가장 선호하는 철학자 한 명을 선택하여 그 철학자의 중심사상을 정리(A4 1쪽 분량)한 후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열을 올리는’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동양철학이, 또는 동양철학자의 어떠한 주장과 이론이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각자의 관점과 견해를 개진해 보기로 하자.
▣ 이황 교육사상의 특징
이황의 교육자로서의 태도나 모습을 말해보면 첫째 가르침을 좋아하였다는 점, 둘째 열심히 부지런히 가르쳤다는 점, 셋째 친구처럼 다정스럽게 했다는 점, 넷째 끝까지 알도록 해주었다는 점, 다섯째 스승으로 자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기서 주목을 끄는 점은 '스승으
. 22세에 성주목사 노경린(盧慶麟)의 딸과 혼인하고, 다음해 예안의 도산(陶山)으로 이황(李滉)을 방문하였다. 그해 별시에서 <천도책(天道策)>을 지어 장원하고, 이 때부터 29세에 응시한 문과 전시(殿試)에 이르기까지 아홉 차례의 과거에 모두 장원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 일컬어졌다.
이원론으로 반박한다. 결국 퇴계는 정주의 이기이원론만을 인정한다.
2) 심성론(인성론)
퇴계는 마음을 이기론적으로 해석하여 사단(四端)은 이의 발이고 칠정(七情)은 기의 발이라고 했다. 사단(사端)이란 맹자가 말한 측은(惻隱), 수오(羞惡), 사양(辭讓), 시비(是非)의 4가지 마음을 가리킨다. 퇴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