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하였다. 따라서 태조대에 창건된 절은 대체로 개경 중심부에 위치하였다고 하여도 크게 틀리지는 않는다. 이들 절 이름은 법왕방, 자운방, 사나방, 왕륜방, 내천왕방, 흥국방 등 북부의 방명과 일치하는 것이 많은 것도 주목된다. 이는 나중에 방명을 지을 때 초기에 창건된 절 이름을 따랐다는 것을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가 시작되었다.
왕조교체기의 문학은 조선왕조의 건국사업을 담당한 쪽과 고려를 위해 충절을 지키려는 쪽으로 노선이 분열되었는데 이를 관각 혹은 관인문학, 처사 혹은 사림문학으로 이어졌다.
건국사업파에는 정도전이 절의충절파에는 길재가 대표로 활약하였다.
특징이었다. 그래서 얻은 성과가 여과과정을 거쳐서 조선 전기에 광범위하게 정착될 수 있었다. 조선왕조의 지배질서가 확립되자 격동은 끝나고 안정이 찾아왔다. 안정을 그대로 유지하는 데서 새로운 모색을 제약하는 보수적인 성향이 나타났다. 어찌 생각하면 조선전기문학은 고려후기문학에 대한
위치 및 특성을 밝힌다.
셋째, 월지궁에 나타난 축의 개념과 특성을 정의한다.
넷째, 월지궁에 적용된 척도를 밝혀 통일기에 건설을 주도한 인물의 출신을 살피고, 밝혀진 기본척도에 의해 전체 계획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규명한다.
다섯째, 월지궁의 건물지에서 바라보았을 때, 월지 수면에 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