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문학 등에 심취하게 된다. 또한, 여색을 좋아하기로 유명했는데, 번화가를 다니던 중 어느 샤미센 연주가와의 만남을 계기로 일본최초의 영화사 日活(닛카쯔)사의 감독인 若山(와카야마)의 조수로서 일하게 된다.
그러던 중, 미조구찌의 나이 24세가 되던 해, 日活사에서 한바탕 큰 소동이 일어나
영화인과 관객이 이 축제의 주인이란 점을 실현시키고 체감하게 해준다. 그래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편안함을 느낀다. 또한 부산영화제를 찾은 세계 각국 감독들은 세계 어느 영화제를 가봐도 감독과의 대화 시간 때 이렇게 수준 높은 질문이 나오는 곳은 처음이라
중심이었다. 반면 쇼치쿠는 명랑하고 활발한 도시풍의 현대극이나 소시민적 행복을 주제로 한 영화를 제작했다.
쇼치쿠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단연 오즈 야스지로 감독을 꼽을 수 있다. 그는 1927년 <참회의 칼>로 데뷔한 이래 소시민의 소박한 행복을 그려 일본적 리얼리즘을 확립한 일본의 대표적인
일본의 문학•영화•연극•음악 네 분야에서 60만의 자이니치가 전체의 30% 몫을 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으로 넘어가 작품활동을 한 재일조선인 작가 김사량을 시작으로 현재도 활동 중인 유미리, 가네시로 카즈키까지 오랜 역사를 지닌 문학, 최양일 감독의 <피와 뼈>
일본, 동남아시아 지역에서의 유행현상”을 의미한다. 한류라는 표현은 1990년대 중후반 대만, 중국 등 중화권에서 처음 사용하였다.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가수 클론, H.O.T. 등이 중화권에서 인기를 얻음에 따라 국내외 언론이 “유행하는 한국 대중문화의 흐름”이라는 의미로 한류를 언급하기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