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시작에서부터 이민족의 지배를 감내할 수밖에 없는 속성을 지닌 듯이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식민 사관의 연장선상이라고 밖에 할 수밖에 없는 웃지 못 할 일이다. 그런데 한국 사학은 왜 한국의 역사가 일본 사학에 의해 훼손되고 왜곡되는 작폐를 그대로 방치해 두었을까? 우리는 숱한 역
사례는 양국의 교류를 통해 공동 교과서를 집필한 대표적인 예이다.이 사례가 주는 시사점을 바탕으로 ‘조용한 외교정책’으로 일관하던 모습에서 벗어나 좀 더 현실적이고 실행 가능한 대응방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Ⅱ. 배경과 목적
1. 역사교과서왜곡 파동
일본의 역사교과서왜곡은 1982
한국을 거점지역으로 확보하고 대륙침략 전진정책을 전개하였으며 군수병참기지로서 착안하여 농업 독려에서 공업 장려책으로서의 정책 전환을 모색하였던 것이다.
일제는 1931년 대륙침략의 전초로서 일본 관동군참모로 하여금 만주점령을 기도, 봉천 교외 유조구의 만철 철도를 파괴케 하였다. 관
일본에 대한 기억은 자랑스러운 ꡒ영광ꡓ의 역사이지 반성해야 역사가 아닌 것이다. 침략의 역사를 기회 있을 때마다 참회하는 독일과 달리 일본은 역사왜곡 세력의 움직임이 지속되어 왔으며, 그 위세는 두 차례에 걸친 후소샤 교과서 파동에서 보이듯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왜 일본에서는
일본의 '새역모'에서 발간한 교과서가 책으로 출간되어 70만부가 팔린 뒤, 교과서 승인을 받아 정식 교과서로 채택된 전례가 있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교과서 포럼도 그런 경로를 거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오마이뉴스 : 허완주 교과서 포럼 위원들을 분석한다.)
포럼은 "역사를 바로 세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