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만을 따로 언급할 때는 '정유재란'(丁酉再亂)이라고 부른다. 이와는 다르게 타국의 사료에서는 임진왜란을 일본에서는 '분로쿠[文祿]?게이초[慶長]의 역(役)', 중국에서는 '만력(萬曆)의 역'이라고 한다.
임진왜란은 조선과 일본, 그리고 명나라 3국이 최초로 조우한 전면전, 곧 삼국전쟁(三國戰爭)
일본의 침략전쟁을 주도한 세력의 嫡子로서 제국 일본의 옛 판도와 영화를 되찾고 싶어 하는데서 찾을 수 있다. 60년전 제국 일본의 꿈을 무산시킨 미국은 이제 그들의 재무장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들의 발목을 잡는 힘은 군국주의 일본에 대한 공통의 역사기억을 갖는 일본 시민사회와 우리를 비롯
조선,명연합함대의 승리로 끝났다. 노량해전 후, 잔존해 있던 일본군이 부산을 떠나면서 임진왜란은 완전히 끝나게 되었다.
임진왜란은 동아시아 삼국, 즉 조선, 명(중국), 왜(일본)에 큰 영향을 미쳤다. 조선의 국토는 7년여 동안의 전쟁으로 인해 황폐화 되었으며 많은 유물이 일본군에 의해 약탈되거
조선과 동맹을 맺고 명나라를 치자는 의도를 가지고 쓰시마 섬의 요시시게에게 명해 조선이 일본에 사신을 보내 수호하도록 하게 한다. 하지만 조선정부는 이를 거절했고 그러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교섭을 계속 청하며 제대로 교섭이 일어나지 않으면 침략을 할 수도 있다는 뜻을 보이게 된다. 조선
일본 간의 활발한 문화교류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고대 삼국시대의 백제, 고구려, 신라와의 문화교류, 근세의 조선통신사와 막부간의 교류,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대의 한류열풍이다. 한국이 일본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이 세 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자세히 전개해 나가도록 하겠다.
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