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며
1910년대 본격적으로 일제의 수탈이 시작되며, 일제는 모든 분야의 종속상태를 요구하면서 문화적 종속상태 역시 강요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적 어두움 속에서 우리 문학은 근대성이 시작되었고, 그것을 향한 여러 가지의 시도와 변화가 나타났다. 발표문에서 1910년대 시대적 배경에
자유율을 지향했다는 것, 산문적 진술을 원용하면서 언어를 민중적인 것으로 해방시켰다는 것, 작품에 표현된 이념적 측면이 시대 비판이나 인간성 해방 등을 노래했다는 것, 인간의 삶을 조명하는 사실주의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우리의 근대시가 시조양식의 해체로 대두한 사설
자유율의 지향이다. 두 번째는 작품에서 사용하는 언어에 욕설, 음담패설 등이 등장하며 작품을 창작하는 데 있어서 언어의 사용이 보다 자유로워졌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이념적인 측면에서 시대에 대한 비판이나, 인간의 해방, 이성간의 사랑, 근대사회에 대한 자각 등을 사설시조의 내용에서 담아
특히 신시는 그에 의해 최초로 제작, 발표되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육당은 자유율에 있어서 더 나은 정제작업을 계속하지 못하였고 급기야는 「태백산시집」이후에는 ‘시’라고 쓰인 작품들이 거의 산문화된 채 자기의 이념을 서술하거나 또는 거기에 수필적인 서경을 곁들이기도 하였다.
Ⅰ 서론
동요란 어린이가 부르는 ‘노래’를 동요라고 하는데 이는 아동가요를 줄인 말이다. 동요는 문학부분과 음악부분 두 영역에서 사용되고 있다. 음악적인 면에서의 동요는 아동의 예술적인 느낌이나 감정에 의해서 만들어진 노래 또는 아동의 느낌이나 감정이 표현되어진 노래를 뜻하며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