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3˜4세 청년세대 중의 7할이 가깝게 지낼 수 없는 동포 친구하고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청년회의 독자적인 조사에서 밝혀졌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할 때 젊은 세대의 단결력 제고는 아주 심각한 과제다.
단결력 제고를 위해서 첫째, 가정 내에서 자기가 한민족의 일원이라는 인
통합을 위한 개념으로서 제시되었다. 버토벡(Steven Vertovec 1996)은 다문화주의가 몇 개의 인접한 소수집단의 단위문화가 주류 사회의 단위 문화를 배경으로 점점이 박혀있는 모자이크가 아니라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이 상호 공존하며 각각의 색깔과 향기를 간직한 조화로운 통합을 이루어내는 샐러드 그
협정으로 우리 정부는 총 4가지 협정을 체결하였다.(문화재 반환 협정, 어업협정, 재일한국인의 법적지위협정, 청구권 협정)
실제로 이 회담은 1951년 이승만 정부 때 이루어졌다. 그러나 정부는 일본과의 국교를 재개하지 않았다. 이러한 연유로 4월 혁명 발발 시 미국은 이승만의 하야를 지지했다. 당
재일동포 형성의 기점은 1910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이후 토지조사사업(1910-18)을 통하여 토지를 잃은 농민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하여 본격적으로 일본으로의 이주를 시작하였다. 1921년부터 1931년까지 일본으로 이주한 조선인은 약 40만에 이르며 그 대부분은 경제지위의 향상을 위하
구성된 국가는 물론 미국과 같은 소수민족을 조화로운 통합을 지향하는 다민족국가(multiethnic state) 국가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소수민족으로서 재외동포가 처한 현실적 상황은 다양하다. 즉 소수민족이라는 존재 규정적 조건은 동일할지라도 거주국가의 소수민족 존재에 대한 정치·경제적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