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을 뛰어난 유학자, 또는 정치가로는 알고 있지만, 법학자로서의 면모는 소홀히 다루고 간과했던 게 사실이다. 한 나라의 틀을 세운다는 것은 현대적인 면에서 보면, 헌법이 새로 제정되는 것이며 그에 따라 각종 법령이 정비되면서 국가의 틀이 구체화된다는 것이다. 비록 조선시대가 현대적인
Ⅰ. 주자학(성리학)의 흐름
중국의 성리학에 한국에 도입된 것은 주자 사후 100여년이 지나서 원나라로부터 이루어 졌다. 安珦이 도입한 성리학은 백이정, 우탁, 이제현, 이인복 등에 의하여 연구되었으나, 충분히 소화되어 토착화하기 시작한 것은 牧隱 李穡에 이르러서였다. 목은 이색에 의하여 수용
정도전은 국가의 초석을 다지는데 크게 기여했으나 태조 이방원에게 역적의 누명을 쓰고 참수 당하였다.
3.정도전과 정몽주의 정치적 성향 비교
정도전(삼봉)과 정몽주(포은)는 목은 이색의 제자로 친분이 두텁고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로 맺어진 사이였다. 두 사람 모두 이색의 문하에서 성리학
시대였다. 이 시기에는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반적인 기틀을 잡은 시기였다.
즉, 집현전을 통해 많은 인재가 양성되었고, 유교정치의 기반이 되는 의례·제도가 정비되었으며, 다양하고 방대한 편찬 사업이 이루어졌다. 또한 훈민정음의 창제, 농업과 과학기술의 발전, 의약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스스로 耕作․耕食한다. 토지소유권은 인정될 수 없는 것인데도 국가가 이를 승인함은 부당하다. 우리는 끝까지 이를 타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지경이 된 것은 일본인의 소행이다. 조선의 지주도 일본인과 한 무리가 되었다.”(조선총독부『조선의 군중』1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