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매부인 이승훈도 이가환과 함께 열심히 성호 이익의 저서를 연구하였는데, 그들과 접촉하는 가운데서 다산은 성호의 저서들을 읽게 되었고 감수성이 많았던 이 시절의 다산은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강석화, 1989: 176).
성호 이익은 18세기 전반기의 대표적인 실학자였다. 그는 모든 사물현상을
다산의 목민 사상의 핵심은 민(民)의 존재를 정치적 주체로 새롭게 부각했다는 점이다. 목민관과 국민이 대등하다는 견해를 바탕으로 애민(愛民)과 위민(爲民)사상을 도출하였다. 다산의 목민심서」는 총 12편 72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대부분 내용이 백성을 기르는 목민관의 정신자세와 실무적 차원
다산의 문학론에 대해서는 실학이 성리학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고 하여 실학을 성리학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하려하거나 혹은 性理學 대 實學이라는 도식적인 兩分法을 전제로 한 관점으로 인해 쉬이 평가되어왔다. 따라서 오히려 그의 실학관과 문학관을 왜곡시키거나 정약용의 문학론에 대한 역
정약용의 목민심서는 목민관, 즉, 정치인으로서 올바른 길을 가야할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현대정치인들이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필독서임에 틀림없다. 정치가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은 경국 교육자가 학생을 사랑과 헌신으로 가르치고 지도하는 내용과 일맥상통 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장에서는
경학해석에 물꼬를 텄던 서계 박세당(朴世堂) 등이 활약했던 17세기는 서로 다른 학문적 관심과 배경에서 개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학파의 맹아기라 할 수 있다.
18세기에는 17세기에 싹텄던 실학적 문제의식과 사상적 요소들이 정리되어 실학파의 학파적 성립을 보게 된다. 성호 이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