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은 한국 근대사가 내포하고 있던 모순과 문제점을 첨예하게 파악하고 실천적으로 극복하려고 노력한 민족적 선구자인 동시에 전통의 창조적 계승을 성취함으로써 문학사의 전환을 보여 준 신문학사 최대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만해 한용운의 불교사적 공적은 그가 [조선불교유신론](1910),
불경을 설법하는 데 온 힘을 다하였다. 그에게 있어서는 혁신적인 불교계의 개혁을 통해 그 폐단을 제거하여 예전의 번성했던 모습을 되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는 타락하고 변질된 불교의 종교적 순수성을 회복하여 대중 깊숙이 뿌리박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였다. 바로 <조선불교유신론>의 저술은
그는 끝까지 만족의 지조를 지켜 서릿발 같은 절개와 칼날 같은 의기를 말해 주는 수많은 일화를 남겼다. 중풍으로 사망, 유해는 화장되어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1962년 대한민국건국공로훈장 중장을 수여,1967년 비가 파고다 공원에 건립되었으며, 1973년 <한용운전집(全6卷)>이 간행되었다.
불교에 입문한 뒤로는 주로 교학적 관심(敎學的關心)을 가지고, 대장경을 열람하였으며, 특히 한문으로 된 불경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 즉 불교의 대중화작업에 주력하였다. 그리하여 1910년에는 불교의 유신을 주장하는 논저 《조선불교유신론》을 저술하였다. 36세 때에는 《불교대전 佛敎大典》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