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와 경기체가, 어부장가, 시조, 가사가 있다. 전자(前者)인 속악가사는 민요와 같이 서민에서부터 왕과 문벌귀족이 향유하는 궁중악장에 이르기까지 향유계층이 넓었으며, 후자(後者)는 사대부가 향유하는 문학이었다. 이러한 까닭에 새로운 왕조를 연 신흥사대부는 조선에 와서 속악가사를 남녀상
야담의 변이 양상과 의미연구」, 연세대대학원, 1988
다. 박희병 : 대부분의 경우 형상력의 발전이나 구성의 치밀함에 있어서 변화가 있지만, 원래 이야기에 대한 편찬자의 적극적 이념 개입은 없고, 근본적으로 민중적 세계관을 기본으로 형성되었다고 보았다. 박희병, 「청구야담연구」, 서울대
야담은 민간에서 구전되던 설화적 모티브들이 결합되어 생성된 것이며, 문자로 정착된 뒤에도 여전히 전승 되어 설화와 같이 유동 문학적, 적층문학적 성격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화보다 실사에 치중한 면이 많다는 점에서 앞 시대의 것과 확연히 구분된다. 그렇기 때문에 야담은 앞 시대에 이
시대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양대 국란을 겪은 조선 후기의 사회는, 다방면에서 많은 변모를 가져왔다.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피폐는 기존의 봉건적 규범과 질서에 영향을 주었다. 즉, 양반 지배층의 무능과 허식이 폭로되고, 평민들의 자아의식이 싹트면서, 평민 대중의 계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