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은 민간에서 구전되던 설화적 모티브들이 결합되어 생성된 것이며, 문자로 정착된 뒤에도 여전히 전승 되어 설화와 같이 유동 문학적, 적층문학적 성격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화보다 실사에 치중한 면이 많다는 점에서 앞 시대의 것과 확연히 구분된다. 그렇기 때문에 야담은 앞 시대에 이
의인화하여 계세징인(戒世懲人-세상 사람을 경계하고 징벌함)을 목표로 하는 문학 양식으로, 고려 후기에 발달한 설화와 소설의 과도기적 형태이다. '설화'가 특정한 개인의 창작물이 아닌데 비해, '가전'은 설화의 형식에서 한 걸음 더 진보한 개인의 창작물로 소설에 한 발짝 더 접근한 것이기에, '가
야담계 작품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월등한 수준에 이르렀다. 야담은 서사문학사적으로 초기양태인 설화와 설화에서 발전된 단편으로-서민층의 생활감정과 사회, 인간 개개인의 문제를 그대로 진솔하게 표해서 소설로 발전하는 과정에 있는 것이기는 하나, 그것이 갖고 있는 설화적인 성격, 역시 간
문학담당층에서 제외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안으로는 세도정치에 의한 국정의 혼란과 삼정의 문란에 의한 민생의 파탄으로 민란이 빈번하게 일어났으며, 밖으로는 서양세력이 중국과 일본의 문호를 개방시키고 조선으로 몰고 오는 상황에서 조선사회는 존폐위기(存廢危機)를 맞게 된다. 이러한 사
『어우야담』은 조선 전기의 견문 잡기류의 형식인 필기에서 조선후기의 야담으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으로 문학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야담의 입장에서 그 사적인 전개를 보자면 1622년에 어우야담이 나온 이후 『천예록』과 『잡기고담』이 나오기까지 적지 않은 공백이 있었다. 최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