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본론
1. 15세기 유학사상의 성격
조선시대사상사연구는 일찍부터 성리학의 철학사상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15세기는 성리학이 아직 이해되지 못한 과도기적인 성격을 지닌 시대로 간주되어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1970년대에 들어와 조선의 성립을 긍정적으로 보는 인식
조선 후기의 역사적 소산물로 파악할 때 비로소 그 가진 바 성격이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한편 실학은 유학사상에 기초하고 유학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상으로 파악될 수는 있을지언정, 중세 유학인 성리학과는 분명히 다른 학문체계로 파악되어야 한다. 성리학은 양반 사대부 중심의
잔재가 남아있다. 따라서 우리는 공자 이전의 여성관부터 유학시대의 전통적 여성관까지 유학에 영향을 준 여성관과 실제로 그 영향력이 구현된 사회를 살펴보고, 과연 유학이란 것이 남녀 차별적인 곳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인지 그리고 이러한 해결책은 없는 것인지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다.
유학교육이 실시되었다. 조선의 교육내용은 전 시대와는 큰 차이가 없지만, 성리학의 영향으로 오경보다 사서(대학, 논어, 맹자, 중용)가 더욱 중시되었으며, 대의명분을 강조하는 사회적 풍토에 따라 주장의 준거를 역사, 특히 중국사에서 찾고자 하였다. 한편 조선 후기 실학자들에 의해 중국사 중심
유학의 핵심개념의 仁은 사람의 기본적인 존재구조인 너와 나라는 인간관계를 뜻하는 글자로 즉, 인간의 가치를 고양하고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것이 儒學의 근본정신이다. 지금부터 조선시대전반에 걸친 유학의 변화과정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1. 조선유학의 흐름
1) 성리학의 정착
성리학은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