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새로운 페미니즘의 가능성』, 연세대학교 대학원, 2000년. 11쪽에서 재인용)
이 후, 그녀는 아버지에게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으며, 불우한 환경에서의 괴로움과 아픔을 공부하는 것으로 해소하게 되었다.
정민상/김진희/이진주/정지현
1939년 그녀는 런던 대학의 유학 시험에 합격하였으나 전
1885년 충북 괴산군 괴산면 인산리에서 홍범식과 은진 송씨의 장남으로 태어나 1968년 평양 교외의 애국열사릉에 안장되었다. 조선 왕조가 몰락의 길을 걷던 19세기 말에 태어나 합방 이전에 일본 유학을 하고, 경술국치 후 중국으로 건너가 신규식, 박은식과 함께 ‘동제사’의 해외 독립 운동에
졸업했고, 내몽고 우주무진치에서 4년 동안 공부했다. 1976년 북경대학교 역사과 고문학과를 전공했다. 1978년 중국 사회 연습원 대학선원 민족역사어과입학했고, 1981년 졸업하고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북방민족역사연구작업을 주로 진행했다. 장승지는 청년작가, 학자이고, 그는 몽고 역사와 북방민족역
문학적 방식이다.
셋째, 평생 그를 괴롭힌 것은 고질적인 치질과 폐병 등의 육체적인 질병과 훗날 인간문화재로 지정받게 되는 당대 명창 박녹주에 대한 사랑병, 그리고 가난이었다. 김유정에게 소설 쓰기는 이 같은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인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문학 동맹에 가담하였고, 1946년 2월 제1회 조선문학자대회 때 ‘우리 시의 방향’에 대하여 연설 하였으나, 정부수립 전후에 전향하였다. 월남 후 중앙대학, 연희대학 등에 강사로 출강 하다가 서울대학교 조교수가 되고, 그가 설립한 신문화 연구소의 소장이 되었다. 6.25전쟁 때 납북되어 북한에서 죽은